모든 것이 '숫자'가 된 세상에서 우리의 '가치'를 지키는 법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다양성'을 외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사회가 세분화될수록 우리는 '연봉', '팔로워 수', '랭킹'이라는 단일한 수치에 더 필사적으로 매달립니다. 각자의 취향이 존중받는 유토피아를 꿈꿨건만, 현실은 주말의 취미조차 '수익화' 가능한지, SNS에서 얼마나 '좋아요'를 받을 수 있는지로 평가받는 피로한 일상이 되었습니다. 왜 다양성의 사회는 오히려 숫자의 지배를 받게 된 것일까요? 지식 큐레이터의 시선으로 그 이면의 논리를 짚어보고자 합니다.
- 통약 불가능한 것들의 강제 결합: '비교'라는 권력
사회학자 웬디 넬슨 에스플랜드(Wendy Nelson Espeland)는 서로 다른 가치들을 하나의 지표로 통합하는 과정을 **'공통 척도화(Commensuration)'**라고 정의합니다. 이는 현대 사회가 효율적인 의사결정을 위해 선택한 도구이지만, 동시에 강력한 '권력 작용'이기도 합니다.
"공통 척도화는 서로 다른 엔티티(Entities)를 공통의 지표에 따라 비교하는 것이며, 이는 사회적 사고의 도구이자 권력의 양식이다." — Wendy Nelson Espeland & Mitchell L. Stevens
에스플랜드의 통찰처럼, 숫자는 단순히 가치를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현실을 '창조'합니다. 요리의 깊은 맛이나 예술가의 붓터치처럼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고유한 '성역'이 숫자로 치환되는 순간, 수치화되지 않은 본래의 가치는 사회적 시야에서 사라져 버립니다. 숫자는 복잡한 맥락을 제거하여 소통의 비용을 줄여주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의 일상을 '비교 가능한 납작한 데이터'로 만들어버리는 폭력을 행사합니다. - 주의력 경제: 당신의 마음은 어떻게 상품이 되는가?
디지털 플랫폼은 우리가 느끼는 이 피로감을 '주의력 경제'라는 시스템으로 화폐화합니다. 알고리즘은 우리의 인지적 초점을 추출하고 패키징하여 광고주에게 판매합니다.
• 데이터 수집과 최적화: 플랫폼은 우리의 스크롤, 멈춤, 클릭을 무차별적으로 수집합니다.
• 알고리즘의 덫: 수집된 데이터는 '진실'이나 '웰빙'이 아닌 오직 '체류 시간'을 극대화하도록 설계됩니다. 이 과정에서 분노와 불안을 자극하는 선정적 콘텐츠가 우선순위를 점합니다.
• 권력의 집중: 구글과 메타 같은 거대 플랫폼은 전 세계 디지털 광고 수익의 절반 이상을 독점하며 우리 마음의 독점권을 행사합니다.
팀 우(Tim Wu)는 **"우리는 서비스 비용을 돈이 아닌 주의력으로 지불하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이 시스템이 무서운 이유는 개인의 '인지적 자율성'을 무너뜨리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무엇에 집중할지 결정할 능력을 상실할 때, 사회적 신뢰는 파편화되고 민주적 토론은 불가능해집니다. 이는 단순한 건강 문제를 넘어선 정치적·사회적 위기입니다. - '걸작'의 함정에서 '살아있는 유산'으로: 가치의 패러다임 전환
가치를 숫자로만 서열화하려는 시도에 대해 유네스코(UNESCO)의 정책 변화는 중요한 대안적 패러다임을 보여줍니다. 과거 유네스코는 서구 중심의 전문가들이 판단하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에 따라 피라미드 같은 '유형 유산(Masterpiece)' 보존에 집중했습니다.
그러나 2003년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을 통해 중대한 전환이 일어났습니다.
• 박제된 보존(Conservation)에서 역동적인 보호(Safeguarding)로: 과거의 원형을 그대로 고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대 간 전승되며 끊임없이 재창조되는 유산의 **'생명력(Viability)'**을 보장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습니다.
• 공동체 중심: 유산의 가치는 외부 전문가가 매기는 숫자가 아니라, 그 문화를 실제로 향유하고 실천하는 '공동체'에 의해 결정됩니다. 무형유산은 살아있는 전통이기에 변화하고 재창조될 때 비로소 그 가치가 유지됩니다. - 다양성을 죽이는 '통합 랭킹'의 폭력성
왜 우리는 숫자에 집착할까요? 후카츠 타카유키는 이를 **'커뮤니케이션 비용'**의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가치관이 다양해질수록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써야 합니다. 친구 넷이 점심 메뉴를 고를 때 각자의 취향(저탄고지, 종교적 이유, 매운맛 선호도 등)을 조율하는 고통을 떠올려 보십시오. 이 피로를 줄이기 위해 우리는 '별점'이나 '랭킹'이라는 가장 저렴한 공통 언어(Protocol)를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가치를 한 줄로 세우는 '통합 랭킹' 시스템은 소수의 독특한 취향을 '가치 없는 것'으로 전락시키는 폭력을 행사합니다. 나만의 고유한 가치가 '대중성'이라는 단일 척도로 변환되어 비교당할 때 우리의 정체성은 상처 입습니다. 플랫폼 설계자들은 전체를 줄 세우는 랭킹을 지양하고, 절대적 지표가 지배하지 않는 세계관을 설계해야 합니다.
결론: 숫자를 넘어 '공존'의 시스템으로
숫자는 효율적인 도구이지만 결코 절대적인 권력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숫자가 규정한 서사에 매몰될수록,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인지적 자율성은 희미해집니다. 이제는 모든 가치를 '돈'과 '수치'로 납작하게 만드는 시스템에서 벗어나, 각자의 '좋음'이 서로 다른 척도로 존중받는 '공존의 시스템'을 고민해야 합니다.
진정한 다양성 사회는 1등부터 100등까지 줄을 세우는 곳이 아니라,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무수한 가치들이 그 자체의 생명력을 얻는 곳입니다. 오늘 하루, 팔로워 숫자나 통장 잔고를 확인하는 대신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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